2025년 9월,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사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약 300명이 체포된 사건은 단순한 불법 체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과도한 내셔널리즘적 산업 정책과, 이를 충족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해야 했던 한국 기업들의 현실이 교차해 있었다.
IRA, 미국 중심의 산업 구조 재편
2022년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기후변화 대응 및 산업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미국 내 제조와 조립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강제하는 성격이 강했다. 특히 전기차 세액공제 조건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 가공, 셀 생산, 조립 등이 모두 북미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면서 글로벌 기업들에 막대한 압박이 되었다.
한국의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이에 대응해 미국 현지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조지아주에 초대형 배터리 공장(Metaplant)을 건설 중이었다. 당초 2025년 상반기 가동 시작을 목표로 했으나, IRA의 세제 혜택을 놓치지 않기 위해 2024년 4분기에 조기 생산 개시로 계획을 앞당겼다. 이로 인해 숙련 기술 인력 확보의 압박이 극심해졌고, 일부 인력이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면서 사태는 불거졌다.
부연하자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 합작 공장은 당초 2025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계획되었으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액 공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2024년 4분기부터 시험 생산 및 설비 가동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는 본격적인 양산과 시장 출하에 앞서 진행되는 '파일럿 생산' 단계로, 실제 소비자용 전기차의 상업적 출하는 2025년 중반 이후부터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세액 공제 혜택은 차량 인도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현대차는 2024년 말까지 생산 설비를 가동해 IRA 요건을 선제적으로 충족하고, 2025년부터 본격적인 양산 체제에 진입하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체포된 한국인 근로자들, 복잡한 비자 체계와 시간과의 싸움
이번 사건에서 체포된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 대부분은 단기 비자(ESTA, B1)로 입국해 현장에 투입되었으며, 이들은 미국의 노동허가 또는 취업비자 없이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는 엄밀히 불법 고용에 해당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비자 발급 절차의 경직성과 급박한 공사 일정이었다.
미국의 H-2B 또는 H-1B 비자 등은 발급 심사와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지연되며, 건설·배터리 분야처럼 단기·숙련이 동시에 필요한 영역에는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일부 하청업체는 규정을 무시하거나 위험을 감수하며 인력을 투입했고, 결과적으로 대규모 체포라는 사태로 이어졌다.
상호이익의 파트너십, 해법이 필요하다
미국은 IRA를 통해 자국 제조업과 공급망을 재정비하는 동시에, 한국·일본·유럽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 유치해 왔다. 실제로 현대-LG 합작 공장은 조지아주 역사상 최대 외국인 직접투자(FDI)이며, 21억 달러 상당의 세제 혜택까지 제공받았다. 그러나 이런 '유치 경쟁' 뒤에, 비현실적 조건을 강요하고 기업에 일방적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이민 단속’이 아닌, 글로벌 공급망 전환기에서의 정책 충돌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IRA를 수용하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파트너 국가이며, 이번 체포 사태처럼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파트너십의 미래를 위해 합리적 해결방안의 필요성
IRA 요건의 유연한 적용
파트너 국가의 기업에 대해, 생산 일정이나 부품 현지화 비율에 유예 기간을 제공하고
조기 가동 조건에 대한 정책적 협상 채널 확보 필요
전용 비자 신설 또는 절차 간소화
대규모 제조 투자 기업을 위한 전용 고속 비자 트랙 마련
기술·현장 인력 수요에 맞춘 단기 비자 유연성 강화
한-미 간 노동·이민 협정 신설 검토
현재 투자 중심의 협력에서 나아가, 인력 운용에 대한 공동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
미국 내 한국 기업 보호를 위한 통상적 대응 외교 강화
이번 사태는 단순히 몇몇 근로자의 체류 위반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산업 재편 정책이 동맹국 기업에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구조적 현실을 드러낸 계기다. 한미 양국은 ‘규칙 기반의 공급망 협력’이라는 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정책적 유연성과 실무적 합의를 바탕으로 진정한 상호이익적 모델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