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31일, 평택군·송탄시·평택시가 하나로 통합되며, 평택시가 새롭게 탄생한다.
이로서 평택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맞이한 도농 균형발전과 서해안 시대는 통합의 산물이다.
통합은 갈등과 논란 속에서 지역의 발전을 위한 최적의 선택으로 평가된다.
지역의 벽을 넘어 생활과 행정의 단일화
평택 통합의 가장 큰 의미는 동일 생활권의 행정 단일화였다.
과거 평택군·송탄시·평택시는 행정권이 분리되어 교통, 교육, 산업 정책이 제각각 달랐다. 이는 행정 효율성 저하와 지역 발전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통합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고, 하나의 도시 단위로 공동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통합은 도시와 농촌의 조화로운 발전도 가져왔다.
농업 중심의 평택군 지역은 송탄·평택시의 도시 인프라와 행정 서비스를 공유하면서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고, 도시는 농촌 지역의 풍부한 공간과 자원을 바탕으로 균형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서해안 시대의 거점 '평택항'
통합의 배경에는 ‘서해안 시대의 중심 도시 육성’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부응했다.
평택은 수도권과 충청권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로, 평택항을 중심으로 한 국제물류산업의 성장 최적지로 관심을 모았다. 통합 이후 정부와 경기도는 평택항 개발, 산업단지 조성, 교통망 확충에 집중 투자하며 평택을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육성했다.
특히 평택항은 현재 인천항을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하며,
자동차 수출입과 컨테이너 물류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통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행정 일원화와 대규모 개발 추진의 결과다.
지역내 갈등 해소와 균형발전 제시
통합 당시에는 “농촌 소외”와 “도시 중심 개발”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러나, 평택시는 통합 이후 출장소 설치, 인프라 확충, 교통요금 인하, 지역별 예산 집중 투자 등으로 행정 서비스 격차를 줄였다.
이러한 노력은 통합을 둘러싼 갈등을 완화하고, 도농 상생 발전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도시로..위상 높여
평택 통합의 또 다른 성과는 ‘세계로 열린 도시’로의 성장이다.
주한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 이전과 함께 국제도시로서 위상이 높아졌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등 글로벌 대기업의 투자로 첨단산업 도시로 발전했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1995년 통합을 통한 행정 일원화의 덕이다.
평택의 미래는 밝다
평택시는 이제 인구 60만을 달성하고 경기남부의 핵심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통합이 없었다면 각 지역은 개별적 발전에 한계에 봉착했을 것이나, 지금의 평택은 국제항만·산업·군사·문화가 융합된 복합도시로 자리 잡았다.
1995년 평택의 통합은 “세 지역이 하나로 힘을 모아 미래를 준비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평택은 서해안 시대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항만·산업도시로 도약했다.
평택의 통합은 지금 “지역 통합이 어떻게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모델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