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9 (목)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대법원, “시효완성 후 일부 변제는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로 추정할 수 없다”

50년간 유지된 ‘시효포기 추정 법리’ 폐기… 채무자 방어권 강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민법상 시효이익 포기 추정 법리를 폐기하며, 시효완성 후 일부 변제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채무자의 권리 보장과 법적 안정성 강화 측면에서 중대한 판례 변경으로 평가된다.

 

 

사건 개요, “소멸시효 완성된 채권 일부 변제…과연 시효포기인가?”
사건은 원고가 피고로부터 총 4차례에 걸쳐 2억4천만 원을 빌린 후 발생했다. 이 중 1, 2차 차용금에 대한 이자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였으며, 이후 원고는 피고에게 1,800만 원을 변제하였다. 피고는 원고 소유 부동산 경매에서 약 4억6천만 원을 배당받았고, 이에 대해 원고는 시효완성된 채권에 대해서까지 배당이 이뤄졌다며 배당이의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원고의 일부 변제가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 피고의 시효완성 채권에도 일부 배당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쟁점, “시효완성 후 일부 변제는 ‘시효이익 포기’로 추정 가능한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 채무자가 일부라도 채무를 변제한 경우, 이를 두고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기존 판례(1967.11.28. 선고 67다1752)는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면, 그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법리를 오랜 기간 유지해 왔다. 이는 실무상 소멸시효의 완성에도 불구하고 채권자의 권리를 일정 부분 보호해주는 효과가 있었지만, 채무자의 권리 포기를 지나치게 쉽게 인정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 추정 법리 폐기… “개별 사안별 실질 심사 필요”
대법원 전원합의체(2025.7.24. 선고 2023다240299)는 8대5의 다수의견으로 기존 판례를 폐기하고, 시효완성 후 일부 변제를 했다고 해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 다수의견 요지
단순한 변제행위는 시효이익 포기 의사표시로 추정할 수 없음.
시효이익 포기는 채무자의 권리 포기이므로 명확한 의사표시가 있어야 하며, 추정은 부적절.
기존 추정 법리는 경험칙에도 반하며, 채무자에게 불리한 입증 부담을 과도하게 부과함.
시효완성과 채무승인은 구별되어야 하며, 단순한 채무 인정 또는 일부 상환이 곧바로 시효포기를 의미하지 않음.

 

▶ 판단기준 제시, 포기 의사 ‘총체적 판단’ 필요
대법원은 향후 시효이익 포기 여부 판단 시 다음 요소를 종합적·객관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변제 동기 및 경위
변제의 자발성 여부
시효완성 채권과 변제 금액의 비율
시효 완성 시점과 변제 시점의 시간적 거리
당사자 간 거래 관행 및 관계
변제 전후의 언행 등

 

이에 따라 원심이 단순 변제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라며 파기환송했다.

 

‍별개의견(5인), “추정 법리 유지 가능”… 대법 내 입장차도 드러나
다수의견과 달리, 5명의 대법관은 추정 법리 자체의 폐기를 반대했다. 이들은 “추정은 반증 가능하므로 지나치게 불합리하지 않고, 오히려 실무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왔다”며, 기존 법리 유지를 통해 실무 혼란을 방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판결의 의미와 파장
이번 판결은 50여 년간 유지되어 온 법리를 폐기한 중대한 판례변경으로서, 민법상 시효제도의 기능과 채무자의 방어권 보장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판결은 실무상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채무자가 시효완성된 채무에 일부 변제했다고 해서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로 보지 않음
채권자는 시효완성 후 채무자의 변제행위만으로는 시효이익 포기를 주장할 수 없음
채무자의 변제는 자발성·구체적 의사표시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판단되어야 함
민사소송상 시효항변과 관련된 입증 구조 변화 예상
금융권 및 부동산 경매 실무에 상당한 영향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단순한 채권·채무 문제가 아니라, 권리 포기라는 중요한 사법 원칙을 둘러싼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한 판례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는 시효이익 포기 여부를 보다 면밀히 다투는 심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변제 전후의 언동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