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경기뉴스원/경기뉴스1】 | 2025년 9월 2일, 경기도 부천시의 한 배수지 공사현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사망 원인은 ‘질식’으로 추정된다. 지하 밀폐 공간에서의 안전 불감증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예고된 참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고는 이날 오전, 부천시 동 소재 배수지 신설 현장에서 발생했다. 해당 작업은 배수지 내부 구조물 점검 및 설비 설치 과정이었으며, 작업자는 약 5미터 깊이의 밀폐된 공간에 진입해 작업 중이었다. 당시 현장에서는 송풍기나 가스 측정기, 산소 마스크 등 기본적인 안전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에 들어간 50대 노동자 A씨는 일정 시간 뒤 연락이 두절됐고, 동료 작업자들의 신고로 119 구조대가 출동했다. 구조 당시 A씨는 이미 의식과 호흡이 없는 상태였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소방당국은 질식사 가능성이 높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부천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올해 들어 지하 구조물 및 밀폐 공간에서 발생한 연속적인 사망사고 중 하나다. 밀폐 공간 내 작업은 공기 중 산소 농도가 낮거나, 메탄·황화수소 등 유해가스가 발생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특별한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장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2025년 7월, 대전 유성구의 하수도 관로 정비 현장에서 40대 작업자 2명이 질식으로 사망했다. 구조에 나섰던 동료 작업자 역시 중태에 빠졌으나, 역시 기본적인 환기 설비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8월에는 부산 해운대구의 한 정화조 점검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진입 10여 분 만에 쓰러졌고, 현장에서는 산소 농도 13% 이하의 저산소 상태가 측정됐다. 기준치는 19.5% 이상이다.
그리고 이번 9월 부천 사고까지, 3개월 사이 4명 이상의 노동자가 유사한 환경에서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고가 “예외적인 사고가 아닌, 구조적인 산업재해”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부천시는 사고 직후 긴급하게 대응에 나섰다. 조용익 부천시장은 사고 당일 현장을 방문한 뒤, 부시장과 국·과장급 간부들이 참여한 비상대책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조 시장은 회의에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지자체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관내 모든 공사 현장에 대한 특별 안전점검을 즉시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재발 방지를 위한 전담 TF(Task Force)를 구성하고, 필요 시 민관 합동조사단으로 확대해 건설현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전면 재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부천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지하 및 밀폐 공간 작업을 포함한 전 공정에 대해 가스 측정, 환기장치 설치 여부, 보호장비 착용 실태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조 시장은 “사망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유가족 지원과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더 이상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전면적인 안전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안전 전문가들은 밀폐 공간 작업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전 규정 미준수와 관리 책임 회피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장 관련자는 “밀폐 공간에서 작업할 경우, 작업 전 산소 및 유해가스 측정, 지속적인 환기, 응급 구조 계획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이런 절차를 생략하거나 무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법적 처벌이 강화되어야 하며, 지방정부 차원의 상시 관리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부천 사고는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다. 반복되는 지하 질식사고는 노동자의 안전이 여전히 후순위에 놓여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미 수차례의 사고를 겪고도 제대로 된 제도적 보완 없이 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제도의 실패이자 구조적 인재(人災)이다.
지하 공간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 위험은 통제 가능한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후회가 아닌,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안전관리의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