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러나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유성호 교수는 10월 21일 강의에서 ‘품위 있는 죽음’, 그리고 죽음을 통해 되묻는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결국 더 잘 사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죽음의 진단, ‘검시’와 ‘부검’의 차이
죽음은 의학적으로 생명의 불가역적 정지 상태다. 심장, 호흡, 뇌 기능이 완전히 멈추고, 자극과 대사 반응이 영원히 사라지는 시점을 의미한다.
의학에서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검시라는 절차를 거친다. 검시는 크게 검안과 부검으로 나뉘며, 검안은 시체 외형을 통해 사망을 확인하고, 부검은 내부 장기와 체액 등을 통해 사인을 종합적으로 규명한다.
이와 관련해 유성호 교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부검의였던 황적준 교수의 고려대 의대 학장 취임을 언급하며, 죽음을 정확히 진단하고 사회적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법의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일상에서 병원으로 옮겨진 죽음
한때는 가족이 집에서 임종을 지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대부분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으며, 죽음은 일상에서 멀어진 낯선 사건이 됐다.
유성호 교수는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생의 말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의료는 죽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곧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중요한 이유다. 이 의료는 환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1인칭 죽음’을 직면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죽음의 인칭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는 죽음을 1인칭(나의 죽음), 2인칭(너의 죽음), 3인칭(그의 죽음)으로 구분했다. 환자에게 죽음은 1인칭이지만, 의료진에게는 보통 3인칭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돌본 환자의 죽음은 2인칭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심리학자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라는 5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호스피스는 이 과정이 고통이 아닌 존엄으로 완결되도록 돕는 장치다.
조력사망과 안락사, "선택"
현대 사회에서는 삶의 연장보다 삶의 질과 마무리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조력사망이나 안락사 논의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자발적 안락사는 환자의 동의 하에 의사가 죽음을 유도하는 행위로, 네덜란드, 벨기에 등 일부 국가에서 허용된다.
의사조력자살은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복용해 죽음을 선택하도록 의사가 돕는 것으로, 미국 오리건주 등에서 인정된다.
연명치료 중단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법적으로 가능하다.
이 모든 논의의 바탕에는 고통의 경감, 존엄의 보장, 가족과 사회의 부담 최소화가 있다. 죽음도 인간의 권리이며, 삶의 마무리는 선택 가능해야 한다는 시대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죽음을 넘어서는 기술, 뉴럴링크의 뇌 칩 실험
한편, 일론 머스크의 신경기술 스타트업 뉴럴링크는 돼지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한 실험을 공개해 이목을 끌었다. ‘거트루드’라는 돼지의 뇌에 삽입된 칩 ‘링크(The Link)’는 무선 통신으로 뇌 신호를 실시간 전송하는 기능을 가졌다.
머스크는 이 기술을 통해 마비 환자의 운동 능력 회복, AI와의 뇌 직접 소통, 나아가 죽음 이후 의식의 저장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그는 이 칩을 “두개골 속 핏빗(Fitbit; 웨어러블 디바이스)”이라 표현하며, 인간의 뇌가 가진 정보와 감정을 데이터화할 미래를 예고했다.
오디세우스의 선택과 현대인의 품위
고대 서사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거인 폴리페모스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를 ‘Nobody’라 칭하며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는 실수로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험난한 여정을 치르게 된다.
이는 실리와 명분 사이의 갈등을 상징한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본래의 목적(명분)을 이루기 위해 지혜롭게 실리를 활용한 리더였다. 오늘날에도 이는 위기 속에서 균형 잡힌 선택을 해야 하는 리더십의 본보기로 해석된다.
죽음을 준비하자
강의 말미에 유성호 교수는 한 소설가의 임종 유언을 소개했다. "나는 여한 없이 살다 간다. 문학상도, 제사도 필요 없다. 가족끼리 밥이나 먹어라." 이 말은 삶과 죽음을 대하는 가장 담백하고도 품위 있는 태도였다.
그는 노화와 죽음을 후회 없이 맞이하기 위한 세 가지 준비로 '자신을 위한 준비, 죽음 이후 남겨질 사람을 위한 준비, 보다 나은 죽음의 과정을 위한 준비'를 들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단지 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성찰의 시작이며 품위 있게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