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이 죽는다. 사람은 줄었는데 가게는 더 많아졌다. 수요는 빠르게 이탈하고 있지만 공급은 멈추지 않고 늘어난다. 이 괴리는 결국 과잉 경쟁, 폐업, 공실로 이어진다. 해운대, 신촌, 이대 같은 상징적 상권조차 이 흐름을 피해가지 못했다.
"사람은 줄었는데 가게만 늘었다"
대표 관광지인 부산 해운대의 상권은 겉으로 보기엔 활기를 띠지만, 수치는 정반대를 말하고 있다.
휴게음식점 수는 2015년 938곳에서 2023년 1582곳까지 폭증했다.
그러나 2024년엔 1521곳으로 첫 감소, 정점을 지나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폐업률은 2.5~2.8배 급등. 일반음식점은 15%, 휴게음식점은 31%에 달했다.
해운대는 여전히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도시지만, “머물지 않고 떠나는 곳”이 된 지 오래다. 여름, 주말, 낮 시간에만 몰리는 단기적 수요에 기대다 보니, 상권은 빠르게 과열되고 무너졌다.
“상권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점포는 몰려들고 수요는 식는다.” – 상권 분석 관계자
공급은 쏟아지는데, 소비자는 이탈한다. 서울 신촌·이대 상권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대비 공실률이 중대형 상가 11.3%, 소형 상가 8.5%로 상승했다. 20여 년을 버틴 프랜차이즈 카페·패스트푸드점도 잇따라 철수 원인은 소비 트렌드가 온라인·신흥 상권(성수·용리단길)으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새 점포는 계속 생겨나고 임대료는 크게 내려가지 않았다. 수요가 없는데 공급만 늘어나면서 시장은 왜곡되고 있다.
"누가 이 상권에 투자했는가"
상권 과잉은 단순히 자영업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공급 확대에는 투자자, 건물주, 지자체, 개발업자의 기대 심리가 작동한다.
“이곳은 원래 잘 되는 지역이니까 괜찮겠지”
“유동인구가 많아 보이니 장사도 잘 되겠지”
“브랜드 들어오면 임대료 더 받을 수 있어”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수요는 분산되고, 소비는 온라인으로 옮겨가며, 사람들은 더 이상 ‘익숙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트렌드는 바뀌었는데, 상권은 과거의 성공에 안주했다.”
이제는 ‘줄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상권을 위해서는 ‘적정 공급’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빈 공간을 채우기보다, 수요에 맞게 조정하는 구조 개혁이 우선이다.
콘텐츠 없는 공급은 수명 짧은 상가로 전락
공급을 늘리는 개발보다 ‘체류 동선’ 설계와 콘텐츠 투자가 먼저
지자체도 단순 점포 수 증대보다 상권 다이어트와 리모델링에 집중해야
상권 쇠퇴는 수요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수요보다 더 빠른 공급이 만든 구조적 과잉의 결과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가게가 아니라, ‘머물고 싶은 이유’가 있는 공간이다.
줄이는 용기, 비우는 전략이 상권을 다시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