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강선 열차를 타기 위해 오후 1시 30분, 길을 나섰다.
이매역에서 열차를 타려면 먼저 돌마고에서 내려야 했다. 7번 출구는 공사 중이라 폐쇄되어 있어 8번 출구로 돌아 들어갔다. 1번과 2번 출구는 너무 멀찍이 떨어져 있다. 분당선에서 경강선으로 갈아타는 길은 생각보다 한참 멀었다. 열심히 걷다 보니 아직 한낮의 더위가 남아 있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그래도 걷는 일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즐거움이다.
정각 2시, 열차는 다음 정거장인 삼동역에 도착했다. 마침 남한산성 문화재와 관련한 행사 포스터가 전철안에 보인다. ‘31회 남한산성 문화재, 성곽 축성 400년 기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성곽처럼 오늘의 여행도 언젠가는 한 장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열차는 여주역으로 계속해서 달렸다.
여주역에 내리니 버스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903번 버스 기사님께 영월루로 가는 길을 물었다. 기사님은 바로 앞으로 가는 버스는 없다며 이 버스를 타면 그곳을 지나간다고 알려주었다. 낯선 곳에서는 이런 도움이 진심으로 고맙다.
상동사거리 직전에 기사님이 다시 길을 알려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영월루를 향해 걸었다.
멀리 현충탑이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현충탑에 이르러 참배했다. 충혼탑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이곳에도 지난 세월, 그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의 기념비가 있다.
현충탑 뒤편으로는 여주 목사들의 불망비와 선정비가 줄지어 서 있었다.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이름과 비석이 남아있다. 비석은 그자리에 서서 묵묵히 지난날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 더 오르니 영월루가 보인다.

영월루에 올라 여강을 바라본다.

강은 생각보다 넓다. 여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강 뒤로는 나지막한 산들이 길게 이어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산맥처럼 이어 달렸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풍경은 평온하다.
강가 언덕 아래에는 신륵사가 강을 맞이하고 있다. 그앞으로는 여주 출렁다리가 여강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강가에는 거대한 주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영월루는 세월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월루는 제자리에 있어왔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도 변하고, 강가의 건물도 달라지고, 강을 건너는 다리도 새로 생겨났다. 영월루만이 오래된 자리를 지키며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여강은 예나 지금이나 쉼없이 흘러간다.

강은 변함없이 흐르고 산도 그 자리를 지키지만, 사람은 떠나고 또 새로운 사람이 그 곳을 채운다. 문득 여말선초의 야은 길재가 읊었다는 시조가 떠올랐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영월루에서 여강을 바라보며 이 시조를 떠올리니 그 뜻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오백 년 전 길재의 마음이나, 오늘 영월루에 올라 그 강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산과 강은 남아 있지만 사람은 떠난다. 사람들이 만들었던 길과 건물과 다리도 언젠가는 다시 변할 것이다.
영월루는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변화를 지켜볼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바라보는 여강은 세월 그 자체다. 흐르는 강물 위로 시간이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여강은 오래전부터 끝없이 흘러왔고 앞으로도 흘러갈 것이다. 그 강을 바라보며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 역시 언젠가는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도 오늘의 풍경은 내 눈앞에 우뚝 서 있다.
오후 그 시간, 영월루에서 바라본 넓은 여강. 나지막한 산들이 이어지고, 강가 언덕 아래 신륵사가 자리하고, 새로 놓인 출렁다리의 거대한 주탑이 강 위로 솟아 있던 풍경..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오래된 누각 하나가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달이 뜨는 곳을 향하여 영월루에서, 나는 흐르는 강을 바라본다.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바라본 여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