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목포의 골목에서 청춘을 마주하다 이민봉 대기자 / 국회출입

  • 등록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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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유수처럼 흐르고, 도시의 풍경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기억 속에 남은 한 조각의 골목길과 그 안의 소리는, 세월이 지나도 선명히 가슴을 울린다.

 

이 글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한 세대가 공유한 공간의 기억이자, 도시 공동체의 생생한 기록이다. 저자는 목포라는 한 도시를 배경으로, 자신이 거쳐온 시절의 풍경과 사람, 소리, 냄새, 감정을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우리 모두의 과거”를 상기시킨다.

 

아이스께끼 소리와 함께 되살아나는 골목의 풍경

“이약이나 쥐약이나”, “아이스께끼”, “반지락젓 왔어요”…

이런 소리들은 그 시절 어린이들의 발걸음을 골목으로 이끌었다. 거리 곳곳에는 생계를 위해 목청을 높이던 장사꾼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합창하듯 그 외침을 따라했다.

 

이러한 소리들은 단지 장사 수단이 아니었다. 그 소리는 공동체를 엮는 리듬이었고, 계절을 알리는 신호였으며, 유년의 감정을 촘촘히 엮는 정서적 배경음이었다.

 

술에 취한 쌀집 노인과 항구의 기적소리

도시의 기억은 인물과 결합되어 살아 숨 쉰다. 술에 취한 쌀집 할아버지 ‘불종태’는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었다.

 

항구에서는 조양호, 천신호, 가야호 등의 여객선이 섬사람을 기다리며 기적을 울렸다. 이 소리는 단순한 운송수단의 소리가 아닌, 누군가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였고, 이별과 만남이 반복되는 삶의 현장이었다.

 

극장, 바람, 일터 — 서민의 정서를 품은 공간들

원진극장과 시민극장, 그리고 변사의 목소리는 문화가 귀하던 시절, 도시민의 감성과 상상력을 채우던 창구였다.

 

노적봉, 대성동, 갓바위, 삼학도에 부는 바람은 청춘의 땀을 식혀주었고, 도깨비시장과 대한통운 창고 앞의 쌀가마는 당시 서민경제의 중심축을 이루었다.

 

특히 ‘삼학소주’, ‘조선내화’, ‘행남사’ 같은 기업들은 서민들의 노동이 기적을 만든 상징적 공간으로, 단순한 일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도시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질문

세월은 지나고, 그 많던 풍경과 인물, 소리들은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글은 묻는다.

"그 많던 추억들은 다 어디로 갔나?"

 

이 질문은 개인적 회상을 넘어, 도시가 발전과 현대화 속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조용히 되짚는다.

 

양동제일교회 옆 굴속에서 살던 쥐약장수, 역전 근처에서 윷놀이를 하던 한량들, 도깨비시장에서 몰초를 팔던 아주머니...

이름 모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소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과연 잊혀져도 되는 존재들인가.

 

노년의 회상, 그리고 미래의 추억

글의 마지막은 현재 노년기를 맞은 저자의 시점에서 마무리된다. "칠십의 언덕에 선 우리"는 더 이상 과거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10년의 삶을 기억으로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눈을 감으면 되살아나는 유달산의 노을, 골목의 소리, 어린 시절의 발자국들.

그리움은 늘 청춘의 이름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추억은 단순한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낸 시간의 증거다.

 

이민봉 대기자의 글은 목포라는 도시의 역사적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도시를 이루는 것은 건물과 도로만이 아니다. 그 안에 살아 숨 쉬던 사람들, 울려 퍼지던 소리, 그리고 거기에 얽힌 추억들이 모여 도시의 ‘정체성’을 만든다.

 

도시는 변해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기억을 붙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돌아봐야 할 ‘진짜 과거’일 것이다.

 

이민봉 대기자는 

국회 출입 전문기자. 한국 정치와 사회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동시에, 지역과 서민의 삶을 기록하는 데 오랜 시간 헌신해왔다.

 

 

 

추억이 솟아나네 ㅡㅡㅡㅡ

작가 이민봉

 

이약이나 쥐약이나

고무줄도 삽시다 반지락젓 왔어요

일진당 아이스깨끼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소리

아이들 신나게 뒤따르며 합창하던 그 시절

 

불종태 쌀집 할아버지

오늘도 거하게 술 한잔 걸치시고

 

고래고래 부르던 주정 소리에

북교동 하늘은 늘 떠들썩했었지

 

종일당 아이스께끼 하나에

여름 더위는 달콤히 녹아내리고

 

원진극장 시민극장 변사 목소리에

길가던 노인네도 발걸음을 멈추었지

 

부둣가 조양호 남성호 한양호 천신호

가야호 이미자 노래소리

섬사람을 기다리며 기적을 울리던 항구

 

멜라꽁다리 건너면

하역 소리 요란히 쏟아지고

 

말구루마 소구루마 에 실린 쌀가마가

대한통운 창고 앞에 산처럼 쌓여가던 풍경

 

노적봉 오포대 대성동 돌집 파출소

정오를 알리던 오포소리

우리 가슴에 북소리처럼 울렸네

 

좌판의 고래고기한점 시래기 국물 한 사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유선각·달성각 삼학도 갓바위 바람결은

청춘의 땀방울을 식혀주었지

 

일등바위에 올라서면

세상이 온통 내 것 같았고

 

삼학도 갓바위 언제나 곁에 있었는데

그많던 추억들은 다 어디로 갔나

 

유달산 유방산 바라보며

사춘기 시절을 건너던 우리

 

양동제일교회 옆 굴속에 살던 쥐약장수

정명여고옆 초가집 함께 살았던

그시절 그모습 아직도 추억속에 살아 있네

 

역전 옆 대한통운 그늘 밑

윷판에 몰두하던 한량들

 

댓빡에 담배 몰초 팔던 아짐마

도깨비시장 아매사탕 고래고기 좌판

 

항아리 소금에 우린 감 다 어디갔나

모두가 우리의 삶이었네

 

대만동 해수욕장 

뒷개화약골 뼈맞춰 박정골

그 골목마다 청춘의 발자국이 새겨졌고

아이스께끼 장사 소리에

아이들 무리는 또다시 모여들었지

 

오거리 용다방 마담의 웃음소리

노란달갈 상화탕 

 

양동육거리 연날리며 뛰어다녔던 그시절

 

그때 목포는 가난했으되

힘이 있었고 꿈이 있었네

 

행남사 조선내화 삼학소주 추억속에

서민의 땀방울은 세월속에기적을 만들어 나갔지

 

쥐약장수의 목청

소구루마 어낭소리 바퀴소리

그 모든 것이

지금은 우리모두가 공유 하는

추억이요 역사가 되었네

 

이제 칠십의 언덕에 선 우리

앞으로 십년을 바라보며

또다른 추억속에 살고있네

 

노년의 삶 속에서 눈 감으면

그 옛날 목포의 거리와 골목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적신다

 

유달산 노을 속에서

우린 다시 소년이 되어

거리를 달리고 아이스께끼를 나눠 먹고

극장 변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움은 늘 청춘의 이름으로 남아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추억하며  

오래도록 추억하며

우리 함께 살아 숨 쉬리라

 

 

유형수 기자 rt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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